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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악기들..

일본 악기 박물관을 찾아서

리빙클래식뉴스 편집부

일본 통신원 최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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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언덕, 시즈오카(静岡)를 떠나는 날 비가 퍼부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우비를 또 입고 동서로 설쳤다. 시즈오카에서 나고야로 가는 길에 두 군데를 들렀다. 하마마츠에선 ‘악기 박물관’, 가마고리에서는 ’다케시마‘와 ’해변 문학관‘이다. 

 
하마마츠는 야마하 악기 본사, 가와이, 롤랜드 사가 있다. 악기의 도시 하마마츠에서 가장 볼 만한 곳은 악기 박물관이다. 소도시 박물관이라고 얕보면 안 된다. 세계 유일한 악기부터 구석구석의 재미난 악기까지 양과 질을 모두 갖췄고, 관리도 철저히 되어 있다.
피아노만 해도 가장 오래된 것부터 수십 대, 관현 타악기들이 고대부터 현대까지 역사 순으로, 발전해 온 순서로, 한데 모여 반짝이고 있다. 
양도 많지만 희귀한 악기들이 신기해 눈이 돌 정도다. 더구나 고대 악기들은 그 소리를 들어볼 수 있게 오디오 장치가 돼 있어서 귀마저 즐겁다. 
오늘은 피아노를 처음 고안한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에 대해 설명하는 20분짜리 기획 강연이 있었다. 
 
피아노들을 보니 언젠가 읽은 소설이 생각났다. ‘미야시타 나츠’의 <양과 강철의 숲>이라는 피아노 조율사의 아야기이다. 비유적 제목에 끌려 고른 책이었다. 
피아노의 해머를 싸는 펠트는 좋은 풀을 먹고 자란 질 좋은 양털로 만들어진다. 양이란 역사 속에서 매우 중요한 동물로 여겨져 왔으므로, 양털로 만들어진 피아노의 해머도 피아노에서 가장 중요하다. 강철로는 피아노의 현을 만든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상자 속에 들어있는 모든 부속과, 그 부속들을 안고 있는 북미의 소나무로 만들어진 몸체, 마침내 그 피아노를 통해 태어나는 소리들의 울림, 그것이 바로 숲이라는 것이다. 
<피아노의 숲>이라는 애니가 울림이 큰 것도 그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최소진 기자
 
하마마츠에서는 우리나라 통영에서처럼 국제 음악제가 열린다. ‘하마마츠 피아노 콩쿠르’와 ‘시즈오카 오페라 콩쿠르’ 두 개가 있다. 오페라 콩쿨에는 우리나라 이영조교수님이 매년 심사위원으로 활약하는 곳이기도 하다.
얼마 전엔 ‘하마마츠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모델로 ‘온다 리쿠’가 쓴 장편소설 <꿀벌과 천둥>을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콩쿠르를 몇 십 차례나 직관하며 집요하게 쓴 작품이다. 
작가가 10여 년 동안 하마마츠에서 콩쿠르를 취재할 당시, 2007년에는 조성진이 15세 최연소자로 우승했고, 후엔 이혁이 입상했다. 작가의 작품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헤드폰 속 오래된 악기들의 소리는 음악을 타고 시간을 거스르고 있다는 착각이 들게 한다. 과거에 닿는 순간 중세나 고대의 옷을 걸치고 원형 경기장 돌계단에 앉아 류트 연주를 듣고 있는 것 같은… 
마지막 악기까지 사진을 다 찍고 현재로 돌아오니 바깥은 빗소리로 가득했다. 비가 억수로 내리는 소리도 하늘과 땅의 퍼커션 연주 아니겠나. 박물관 바로 옆 콘서트홀에서 들리는 음악 소리가 빗소리에 먹혀도 서운하지 않았다. 
 
다케시마에는 신사(神社)가 다섯 있다. 숙녀는 없다길래 내가 갔다. 그러나 소진 숙녀는 신사엔 관심이 그다지 없어서 섬 둘레길만 조신하게 걸었다. 길이 좁고 나무들이 늘어져 천정 낮은 터널 같았다. 허리를 구부리고 섬돌이 하고 나니 키 큰 숙녀는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다. 
 
다시 바다를 잇는 다리를 건너 ‘다케시마 문학관’에 들렀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비롯한 여러 작가들, 옛 영화감독들이 죽 도열해 비 내리는 데도 왕림하셨다고 환영해 주었다. 보답으로 한 분 한 분 눈 맞추며 대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드렸다. 
여기저기 문학관이 참 많다. 문학관이 대접을 받는 곳이다. 하기야,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도 아직 꽤 있다. 발이 여럿인데 발소리도 죽이며 다니니 내 발소리만 나는 것 같다. 
문학관에서 젊은 연인이 속삭이며 주고받는 모습이 예뻤다. 다정한 문학청년들이라니, 요즘 세상에 흔한 일은 아니지 싶었다. 
 

지금은 나고야 역 근처 숙소, "조용한 방으로 부탁해요" 했더니 적막강산이다. 퍼붓던 비도 그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