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클래식뉴스 편집부
피아노와의 삶 80주년 음악회
장혜원 음악회
“김 사장님, 나예요. 어젯밤 잠을 한숨도 못잤어요.”
“네? 무슨 일 있으세요?”
“내가 계단을 내려오다가 넘어져서 병원을 가야 하는데 김 사장이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공연을 하루 앞두고 85세의 피아니스트가 계단에서 넘어졌다면 이건 보통 큰일이 아니다. 천만다행으로 고관절과 손가락은 다치지 않았고 왼쪽 발만 다쳐 퉁퉁 부었다고 한다.
“걱정마세요. 누구라도 빨리 보내드리겠습니다.”
가장 빠른 치료방법은 당장 침을 맞아야 한다며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건너편의 용한 침술원으로 가야 한다는 사정을 듣고 급한 대로 회사 임원에게 전화해 급히 출발시켰다.
저녁에 통화해보니 통증은 조금 가라앉았지만 2, 3일 후에는 통증이 심해질 것을 우려하며 ‘피아노를 다 칠 때까지만이라도 잘 견뎠으면’ 하신다. 평생을 남에게 허점 한번 보이지 않으려는 모습에 감동과 안쓰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빌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앨런 튜링, 아이작 뉴턴, 심지어 아담과 이브에 이르기까지 인류사에 창조적인 발견과 사건의 이면은 모두 사과와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사과와 관련된 하나의 사건이 있다. 1991년 작은 호숫가 언덕위의 이원문화원 사과창고에서 전혀 모일 것 같지 않은 음악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한국피아노학회를 결성하면서 개인주의에 매몰 될 수 있는 피아니스트들의 거대한 모임이 시작되었다. 그 중심에, 아니 창안자가 바로 당시 50대의 피아니스트 장혜원 이화여대 교수였다.
오늘 2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피아노 인생 8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연주회를 펼친다. 해방 전 5살 때 피아노를 시작해 무려 80년동안 피아노와 함께해온 장혜원 교수님의 삶이 녹아든 음악회다.
초등학교 5학년때 6.25전쟁을 만나 시체가 널부러진 서울을 떠나 대구에 피난살이할 때도 대구피난중부국민학교에 다니며 국군들을 위로하는 합창음악회 반주를 했던 때가 벌써 70년전의 일이다.
서울에 돌아온 후 숙명여중 2학년이 되어 아침마다 애국가와 교가 반주를 도맡으면서 정기예술제에서 피아노독주를 하는가 하면, 배재학당에서 리사이틀을 갖기도 했다. 서울시향 오디션에 합격해 국립극장에서 김생려 지휘로 소년소녀협주곡의 밤에 출연,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을 협연하며서 본격적인 피아니스트의 길을 걸었다.
지난 80년의 삶을 어찌 몇쪽에 담을 수 있을까? 장 교수님과 인연을 맺은 지 30년이 넘었지만 가장 인상에 남는 사건은 제1회 그랜드피아노콘서트였다. 취재하고 인터뷰할 때와 달리 공연진행은 왠만한 두뇌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치밀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에도 그분이 설립한 한국피아노학회, 이원문화원 페스티벌과 포럼, 교재출간 등 모험적이 개척자적인 사건마다 함께 해왔던 것 같다.
이틀 전 다친 몸으로 힘들게 연주하실텐데 무사히 끝마치기를 기도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어떤 무엇도 막을 수 없는 음악 외길!
과연 우리들은 어떻게 살것인가!